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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감상하고, 예술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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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앤레스토랑 2025년 5월호] 비네티 자부 - 손진호 교수의 와인 PICK

( 손진호 사진 및 자료 제공 와이넬)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의 신화 속으로
기원전 8~9세기 희랍 최고의 시인 호메로스(Homérus)는 400여 년 간의 암흑기를 걷어 내고, 그리스 세계 최초의 문학 작품을 구술한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첫 번째 책은 그리스 폴리스연합군의 트로이 정벌 전쟁사고, 두 번째 책은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국으로 귀환하는 길고 긴 지난한 10여 년의 여정을 풀어낸 이야기다. 책에서 보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지중해를 방황하는 오디세우스가 가장 많이 지나치는 길목이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섬 인근의 바닷길이다. 이 섬은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지정학 위치를 점하니 당연한 결과기도 한데, 화산 폭발과 신비한 거석 조형물 등 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형 지물이 많기에 호메로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 듯하다. 특히 시칠리아 섬은 이탈리아 반도와 불과 3km 사이를 두고 떨어져 있어, 비좁고 물살이 거칠며 험난한 메시나 해협을 지나야만 하기에, 고대 선원들의 한이 서린 숱한 전설의 보고기도 하다.

한편,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도, 육지와는 다른 ‘섬’이라는 특별한 환경은 새롭고도 험난한, 그러나 흥미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지중해 드넓은 해양은 탁 트인 전망으로 건조한 바람과 시원함을 교대로 안겨 주며, 병충해를 막아주고 기온을 일정하게 조율해 준다. 반면 섬 높은 지대는 대부분 화산 활동의 결과물이 많기에, 화산토 흙의 광물질이 주는 각인이 화인에 배어나기도 한다. 호메로스와 동일한 시기에 고대 그리스 폴리스들의 식민 도시가 이탈리아 남부까지 건설됐으니, 자연스럽게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한 그리스 품종의 도입과 포도주 생산이 활발했을 터, 이 섬들의 와인 역사는 3000년을 넘어간다.

봄~여름의 간절기 5~6월호에 걸쳐 필자와 함께 시칠리아와 사르데냐의 두 신흥 명가를 방문할 것이다. 두 양조장 모두 최근 한국 시장에 소개됐는데, 전통적 농사 철학을 기반으로 섬 와인의 정체성을 잘 구현한 와인을 생산해 호평 받고 있다. 유난히 춥고 깊었던 지난 겨울의 악몽을 떨치고, ‘찬란한 새 봄’을 맞는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필자가 드리는 섬 와인 이야기 선물이다.

시칠리아 와인의 ‘자부’심, Vigneti Zabù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반도와 아프리카 북부 튀니지 사이에 떠 있는 삼각형 모양의 섬이다. 북동편은 산악이 발달해 있는 반면, 남서편은 바다로 향해 낮은 구릉지가 발달된 곡창지대를 형성한다. 이달의 주인공 양조장 비네티 자부는 섬의 남서편 아그리젠토(Agrigento)군에 있는 삼부카 디 시칠리아(Sambuca di Sicilia) 마을에서 2007년 설립됐다. 남미 출신인 창립자 아데 아부(Ade Abu)는 1980년에 이탈리아로 이주해 와인 판매업에 종사하면서 ‘와이너리 설립’이라는 꿈을 조금씩 키워 나갔다. 드디어 자신만의 포도밭을 구입하고, 온 열정과 힘을 모아 밭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의 오랜 벗이자 판티니의 수석 와인메이커였던 필리포 바칼라로(Filippo Baccalaro)에게 자신의 포도밭을 보여줬는데, 필리포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돼 있는 자부의 밭에 매료돼 양조장의 와인 양조를 책임지게 됐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판티니(당시에는 파르네제) 와인 그룹에 속하게 됐으며, 필리포는 본사가 있는 아브루쪼에서 시칠리아까지 비행기로 오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품질 관리에 힘
을 쏟아왔다.

양조장 이름은 이 마을 설립자인 아랍 에미리트 출신의 ‘알 자부스(Al Zabuth)’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알 자부스는 이전까지 낙후돼 있던 지역 농업의 발전에 집중적으로 노력했다고 전해지며, 동네의 원래 이름도 ‘Sambuca Zabuthth’였다고 한다. 삼부카는 마르살라시와 아그리젠토 시 사이 중간에 있는데, 이 두 도시가 아주 유명한 관광지다. 마르살라는 유명한 강화 와인 ‘Marsala’의 고장인 동시에 품질 좋은 소금 생산지고, 아그리젠토는 기원전 6세기에 설립된 고대도시로서, 고전기의 예술과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매우 잘 보존된 ‘신전의 계곡’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올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해 이탈리아를 방문한다면 이 지역에서 그리스 신전을 관람해 보고, 맛있는 자부 양조장 와인을 곁들어 식도락을 즐기면 어떨까?

시칠리아 섬에 핀 판티니의 꽃, ‘자부’
삼부카 마을은 1995년부터 독립된 DOC를 받은 와인 산지로서, 섬 남서부에서뛰어난 화이트와 레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다만, 이름의 지명도가 낮기에, 보다 낯익은 명칭인 Sicilia DOC로 레이블링되곤 한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7~8월 평균 기온은 24~26°C, 최고기온은 40~43°C며, 높은 해발 고도와 근 호수의 혜택을 입고 있다. 자부 양조장 포도밭은 와인 산지의 중심인 벨리 델 밸리(Valle del Belice)의 상부 해발350m 수목이 울창한 곳에 있으며, 건조한 기후와 따뜻한 동풍인 시로코(Sirocco) 바람, 인근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다양한 토양의 구성, 이상적인 미세 기후가 형성된 곳으로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비탈 포도밭은 남향으로 심어 있어 포도나무 성장의 기본 요소인 햇빛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 삼부카 지역에서 자라는 포도나무는 더운 여름 낮에 노출되지만 밤에는 서늘한 기온 덕분에 포도가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낸다. 또한 아란치오 호수의 근접성 덕분에 더위가 완화돼 신선한 산미를 보존하는데 도움이 된다. 고대로부터의 와인 생산 역사가 풍부한 땅, 삼부카는 또한 공장 없는 청정 지대로서, 농업이 지역 경제와 지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곳으로, 포도밭과 올리브 고목이 줄과 열을 맞춰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파란 하늘과 아란치오 호수의 수정처럼 맑은 물과 함께 자부 양조장은 이 지역에서 자연을 보존하고 포도의 최고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풍력 발전으로 인한 에너지 자급에 선도적인 와이너리며, 포도밭은 화학비료를 일절 배제한 친환경 농법으로 관리되고 있다. 수작업으로 포도를 엄선하고 제한된 수확량으로 응축된 와인을 선뵈고 있다.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와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판티니 양조팀의 끝없는 노력과 실험정신으로 해마다 루카 마로니로부터 높은 평가를 이어 나가고 있다. 현재 자부 소유의 밭은 약 30ha인데, 일부 포도는 조합의 포도를 구입하고 있다. 마을의 조합과 협력하고 있고, 일부 브랜드는 조합의 와인 양조용 포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포도가 자연적으로 함유한 것 이상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이 와인 양조의 예술이다.”라는 철학을 존중하는 비네티 자부의 21세기 도약이 기대된다.

시음 와인 4종 리뷰

자부 그릴로
삼부카 디 시칠리아 지역 그릴로 품종 100%로 생산된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다. 그릴로는 카타라또(Catarratto)와 지빕보(Zibibbo) 품종의 교배종으로서, 섬의 젊은 신세대 생산자들이 그 미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시칠리아의 대표 청포도 품종이다. 경쾌하고 맛갈스러운 스타일에서 견고하고 숙성된 스타일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뵈고 있다. 자부 와인메이커들은 삼부카 지역에서 생산된 그릴로 포도를 수확해 부드러운 압착으로 싱그런 주스를 짜내고, 저온 발효를 통해 품종 고유의 과일 풍미를 살렸으며,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 숙성함으로써 청량감과 품종 특성을 보존했다. 투명한 황금색에 그린 뉘앙스가 싱그러운 자태를 보이는 2021 그릴로 와인은 레몬, 자몽, 청사과, 파인애플, 복숭아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부께를 연출하며, 특히 허브와 프리지아 봄꽃 향을 자아내는 그야말로 5월의 와인이다. 한 모금 입안에 머금으니, 높은 산미로 활기차고 생동감이 느껴지며 알코올 12.5%vol의 날렵한 몸매에 쌉싸래한 미네랄감이 인상적인 시칠리아 화이트다. 필자가 올봄에 마신 최고의 아페리티프였으니, 신선한 리코타치즈 채소 샐러드, 생선회, 갑각류, 해물 부침개 등과 함께 즐기길 바란다. 루카 마로니 평가 93~94점을 규칙적으로 받고 있으며, 2015년 빈티지는 Berliner Wine Trophy(2016) 금상을 수상했다.

끼안따리 네로 다볼라
시칠리아의 검푸른 밤하늘을 상징하는 색상의 종이 위에 월력에 따라 변하는 달과 별이 하늘에 떠 있듯 그려진 레이블이 동화적이며 아름답다. 뀌베명 ‘끼안따리(Chiantari)’는 시칠리아 방언으로, 포도밭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인 포도나무를 식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시칠리아 농부들은 이 작업을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 수행하며, 언제나 미래의 성공을 해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 왔다. 전통적으로 묘목은 심을 때는 농업 작업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달의 주기를 고려해 심는데, 이는 특히 식물의 미래 성장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수 세기가 흐르는 동안에도 이 놀라운 전통은 계속 유지돼 왔으며, 시칠리아 땅에서는 여전히 훌륭한 포도를 길러내 그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와인들에서 그 진정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끼안따리’라는 이름은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존종하며 생산됐다는 점과 시칠리아 전통 농업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는 정체성을 강조한 작명이라 할 것이다. 사실 필자는 이 와인을 언뜻 보고 처음에 “시칠리아에서... 웬... 끼안띠(Chianti)...?”라고 어리둥절하면서 눈을 다시 비비고 보니, ‘끼안따리’였던 것, 이 즐거운 해프닝이 이 와인을 더욱 기억나게 해주리라~.

화학 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포도를 재배하고, 100% 손수확한 네로 다볼라 품종으로 양조했다.수확 후 신속하게 와이너리로 운반된 네로다볼라 포도는 세심한 선별 과정을 거치고, 부드럽게 압착된다. 싱그런 과일향을 강조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온도 조절을 통해 발효가 이뤄지며, 적절한 기간 동안, 앙금위에서 짧은 숙성 기간을 보낸다. 추가로, 콘크리트조에서의 유산 발효 후, 미국산 오크통에서 4~6개월 정도 숙성한다. 필자가 시음한 2021 빈티지는 선명한 루비 레드 칼라에, 새콤한 체리, 블랙커런트, 자두, 블루베리 향으로 매혹적이다. 향을 더 음미하다 보면 발사믹, 허브, 제라늄, 모카, 바닐라와 오크우드 코코넛, 은은한 흙내음 향이 드러난다. 입안에서의 풍미는 향긋하나 맛은 깔끔하게 드라이하고, 타닌 그립감이 좋으며 벨벳처럼 부드럽다. 당과 산의 밸런스와 적절한 알코올의 힘을 겸비한 순수한 네로다볼라다운 낭만적인 여운으로 즐거움을 준다. 시칠리아 전통 파스타인 노르마 파스타, 말가리타 핏자, 샤퀴트리 요리, 고급 햄버거 셋트, 페코리노 치즈 등과 잘 어울리겠다. 루카 마로니 94포인트, 프랑크푸르트 트로피 금상을 받았다.

 

일 빠소
긴 이름을 가진 네렐로 마스칼레제 품종은 섬 북동부 지역에 에트나 화산을 중심으로 국지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시칠리아의 네비올로’라는 별명처럼 맑고 연한 색상에 미디엄 보디, 조밀한 타닌감을 특성으로 한다. 자부 양조장의 일빠소는 섬 서편의 테루아를 표현해 좀 더 풍부하고 따뜻하고 원만한 균형감을 표현한 마스칼레제다. 귀베명 ‘Il Passo’는 ‘발자국’이라는 뜻인데, 이는 매일같이 포도밭을 돌보는 와인팀의 정성과 세심한 관리를 뜻하는 이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포도밭에 가장 좋은 거름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아닐까 하기에··· 일빠소는 생산법이 조금 특이하다. 포도가 익으면, 송이가 달린 가지를 꺽어 놓고 시칠리아의 태양볕 아래 자연스럽게 마르게 한다. 약 30% 정도 수분이 증발되면, 수확해서, 오랜 침용 기간 발효시키며, 완성된 와인은 프랑스 & 미국산 오크통에서 6개월 정도 숙성시킨다.

필자가 시음한 2022 빈티지 일빠소는 맑은 루비 색상에, 산딸기, 장미꽃, 제라늄 이파리 향이 특징적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후추, 허브, 바닐라, 토스트, 흙내음이 미묘하게 저변에서 올라온다. 산뜻한 산미에 부드럽고 감미로운 농익은 과일 풍미가 감칠맛을 주며, 알코올 13%vol의 ‘바르바레스코스러운’ 놀라운 가뿐함이 네렐로 마스칼레제의 DNA를 백분 표현해 준다. 화사한 새 봄을 맞는 레드 와인으로서, 어울릴 음식은 토마토 & 라구 소스의 이탈리언 파스타, 라자냐, 고슬고슬한 광양불고기 등을 추천한다. 루카 마로니 점수 96~98점을 규칙적으로 받고 있으며, Mundus Vini 와 베를린 트로피에서 금상을 받았다.

임파리
자부의 ‘자부심’, 임파리는 판티니의 양조팀이 삼부카 마을 최고의 포도밭들을 찾아 경작, 밭별로 양조했는데, 그중 이 와인이 다른 여타 와인들보다 명백히 다른 특성을 보여 독립 숙성시킨 결과 탄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뀌베 이름이 ‘Impari(=Uneven)’다. 네로다볼라 품종은 시칠리아 대표 적포도로서, 시칠리아의 고온과 가뭄에 잘 견디며 부드럽고 과일 풍미 가득한 가벼운 레드 와인에서부터 몸집과 풍미가 짙고 강한 타닌 구조의 풀보디 와인으로도 양조된다. 필자 주변의 애호가들 중에는 전에는 아르헨티나의 말벡을 즐겼으나 이제는 시칠리아 네로다볼라를 유럽적 대안으로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임파리는 특별히 선별한 최고의 네로 다볼라 포도를 최소 15일 이상 긴 기간 껍질 침용시키며 발효한 뒤, 프랑스와 미국산 오크통에서 18개월 정도 숙성시킨 후 병입해 18개월을 추가로 병숙성 후 최적의 시음기에 출시한다.

필자가 시음한 2018 빈티지 임파리는 짙은 루비 색상에 적갈색 갸닛 보석 톤으로, 블랙커런트, 블랙베리 드 검붉은 베리 향에, 세련된 향신료 터치가 가미돼 바닐라, 감초, 정향, 후추, 가죽, 이국적인 파이프 담배향이 입안의 미각에까지 길게 이어지며 후각 세포를 행복하게 해주는 관능미 넘치는 와인이다. 13.5%vol의 미들급 보디감을 가진 임파리는 스테이크와 향신료라는 두 가지 재료군의 조합으로 탄생한 다채로운 음식들과 매우 잘 어울리는 그아말로 음식 친화적인 와인이라 느껴졌다. 판티니 수석 와인메이커 데니스 베르데끼아(Dennis Verdecchia)의 역작으로서, 와인 이름처럼 ‘특출한(Impari)’ 레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