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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진호 사진 및 자료 제공 와이넬)

21세기 독일 와인의 새로운 모습
“독일 와인은 달콤하고 가볍다.”는 편견은 이제 정말 옛말이 됐다. 21세기 들어 독일 와인산업은 ‘세대교체와 기후 변화’라는 두 개의 큰 파도를 맞으며 엄청난 질적 전환을 이뤄냈다.
독일 와인의 현대적 변화를 크게 네 가지 핵심 포인트로 정리해 보자. 먼저, ‘트로켄(Trocken, 드라이)’으로의 대전환을 꼽을 수 있다. 과거에는 덜 익은 포도의 날카로운 산미를 감추기 위해 당분을 남기는 방식이 주류였다면, 지금은 산뜻하고 아삭한 산미를 가진 드라이 와인이 독일 와인의 자존심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음식과 곁들이기 좋은 드라이한 스타일을 선호하게 되면서, 리슬링 역시 본연의 미네랄리티를 강조한 드라이 스타일이 대세가 되고 있다.
두 번째 포인트는 지구 온난화다. 지구 온난화는 전 세계 와인 산지에 위협이지만, 상대적으로 추웠던 독일에게는 오히려 레드 와인 품질을 끌어올리는 기회가 되고 있다. 포도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게 되면서,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북부 지역에서도 고품질의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서늘한 기후대를 선호하는 피노 누아의 독일식 이름인 슈페트부르군더(Spätburgunder)는 이제 프랑스 부르고뉴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구조감과 깊이가 생겼다. 기온이 오르면서 포도가 충분히 익을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세 번째로는 세대교체를 들 수 있는데, 젊은 세대들이 가업을 물려받으면서 양조 철학이 완전히 바뀌었다. 포도 수확량을 과감히 줄여 포도 한 송이에 응축미를 담고 있다. 친환경 철학으로 제초제 사용을 줄이고 유기농이나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도입, 인위적인 기술보다는 ‘땅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양조 과정에서도 미니멀리즘 정신으로 개입을 최소화해 포도 품종 고유의 특성을 살리는 데 집중하거나, 이산화황 사용을 줄이는 내추럴 타입에 도전한다.
마지막으로, VDP(독일 우수 양조장 협회)의 노력이 돋보인다. 독일 내 최우수 200여 개 양조장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자율적으로 엄격하게 품질을 통제하며, 테루아에 기반한 4단계 등급 분류를 토대로 관리하고 있다. 필자가 소개하려는 이달의 와이너리는 현대 독일 와인 변혁을 이룬 이 4가지 요건을 완벽하게 결합한 양조장이다.

현 경영주 August Kesseler
독일 라인가우의 명가, August Kesseler
알프스에서 발원한 라인강은 독일 남부 산지를 흐르다, 프랑스와의 국경을 이루며 북상하고는, 비스바덴(Wiesbaden)에서 ‘ㄱ’자로 꺽여져 남향의 포도밭을, 뤼데스하임(Rüdesheim)을 지나 아스만스하우젠(Assmannshausen)에서 ‘ㄴ’자로 꺽이며 멋진 남서향 포도밭을 형성한다. 바로 이 ‘ㄴ’자 부분의 라인강 중류, ‘라인가우(Rheingau) 지방의 서편’이 이달의 명가 아우구스트 케셀러의 보금자리다.
북위 50도선이 지나는 고위도 지역의 해가 일찍 저무는 저녁 무렵에 도착한 필자를 맞이한 3대 경영자 아우구스트 케셀러는 필자보다 4~5살 위로 보이는 초로의 신사였다. 그는 시원한 리슬링 한 잔을 권하며, 사진첩을 꺼내 펼쳤다. 그 안에는 처음 와인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의 사진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돼 있었다.
“할아버지 요제프(Josef)가 1924년에 양조장을 설립했답니다. 아버지 베르트람(Bertram)은 2차 대전 때 참전했었는데 전쟁 포로로 러시아 감옥에 수용됐다가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오셨지요. 아버지는 피노 누아 와인과 리슬링 와인을 오크통에 담아 판매했어요. 그러다가 1977년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저는 19살의 나이에 가업을 물려 받았죠.”
케셀러 씨는 가뿐 숨을 리슬링 한 잔으로 삭히며 옛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어려서부터 항상 경주용 자동차 드라이버가 꿈이었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가업을 이었다고 한다. 당시 2.5ha의 작은 농장을 물려받아, 오늘날 32.5ha로 키워 놓았으니, 강한 신념과 탁월한 전망을 가진 케셀러 씨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1979년에 첫 와인을 병입했고, 전통을 고수하며 피노 누아와 리슬링만을 재배해왔다. 성실히 사업을 운영해, 인근 뤼데스하임을 비롯한 고급 생산지의 좋은 밭을 구입할 수 있었고, 포도밭을 단계적으로 확장해, 현재 33ha의 밭에서 연간 30만 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리슬링 60%, 피노 누아 40%다.
와이너리는 높은 품질 기준과 일관된 철학을 가진 열정적인 전문가팀이 운영하고 있다. 풍부한 경험과 강한 의지를 갖춘 와인 메이커, 막스 힘스테트(Max Himstedt)가 합류해, 세계적인 수준을 향한 도약을 지속적으로 이끌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몇 년간 아우구스트 케셀러와 막스 힘스테트를 보좌하며 셀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젊은 양조학자, 시몬 바타르세(Simon Batarseh) 역시 와이너리의 품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포도 재배 분야에서는 이직 후 포도 재배에 뛰어든 엔드레 카사(Endre Kasa)가 세심한 관리로 포도밭을 돌보며, 최고의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한편, 아우구스트 케셀러의 아내이자 든든한 동반자인 베아테 케셀러는 와이너리 전반을 돌보며 고객 응대와 홍보를 책임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와인의 품질을 인정받아 독일 최고의 와이너리 연합인 VDP에 소속되는 영광을 안았다. 독일 최고의 와인 산지로 인정받는 라인가우 지방에서도 단 35개의 와이너리만 VDP에 소속돼 있다.

드라이 피노와 리슬링의 조련사, August Kesseler
아침에 보는 라인강의 경관은 환상적이었다. 깍아지른 절벽과 그 중턱에 걸린 허물어진 중세의 고성, 녹색의 포도밭과 작은 마을들로 구성된 라인강 중류 지역은 200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케셀러 와이너리는 14세기부터 피노 누아 레드 와인으로 유명한 아스만스하우젠 구역에 위치해 있는데, 여기서부터 라인강은 폭이 좁아지고, 주변 포도밭의 경사는 가팔라진다. 석영암과 점토질 슬레이트가 주를 이루는 가파른 토양이 있는 아스만스하우젠 일대의 주요 포도 품종은 주로 피노 누아다. 케셀러 씨의 꿈은 자기 포도밭에서 부르고뉴의 위대한 피노와 견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들과는 차별화된 독창성을 지닌 포도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경영하기 시작한 두 번째 해에, 당시로서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피노 누아에 말로락틱 발효를 다시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생산자들은 달콤한 와인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산도와 잔당을 맞추는 것을 선호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와인은 시장에서 꽤나 이색적인 존재였지만, 매우 비싼 가격에 판매됐고, 이는 와이너리 성장의 기반이 됐다. 그리고 1983년부터는 완전히 드라이한 피노 누아 레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실제로 경사가 최대 60도에 달할 정도로 가파른 점토질 슬레이트 토양이라 포도 재배가 무척 힘들지만, 그만큼 응축미가 있고 우아한 레드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독일 리슬링 사이에서 보석 같은 레드 와인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아스만스호이저 휄렌베르크(Assmanshäuser Höllenberg GG)’와 ‘뤼데스하임 베르크 슐로스베르크(Rüdesheimer Berg Schlossberg GG)’는 라인가우 최고의 피노 누아 포도밭에서 생산된 레드 와인 그로세스 게벡스 그랑 크뤼다. 하지만 케셀러는 고품질 레드 와인(피노 누아) 생산에만 특화돼 있는 것이 아니라, 라인가우 중하류 지역에도 일류급 리슬링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의 로르크호이저 젤리히마허(Lorchhäuser Seligmacher) 밭에서 생산하는 그로세스 게벡스 리슬링 와인은 독일 『FAZ 잡지』로부터 ‘Best White Wine in Germany, 2016 GG’ 평가를 받았다.
케셀러의 포도밭은 모두 VDP. ERSTE LAGEN® 및 VDP. GROSSE LAGEN®(일급 및 특급 포도밭) 등급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그로세스 게벡스(Grosses Gewächse 그랑 크뤼) 와인부터 ‘데일리 The Daily August’ 와인에 이르기까지, 와인에 사용되는 모든 포도는 이 포도밭에서 생산된다. “저희는 저가 제품군에서도 오직 프리미엄 와인만을 생산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저희가 소유한 포도밭은 모두 VDP. ERSTE LAGEN® 및 VDP. GROSSE LAGEN® 등급으로 분류된 곳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저희는 자체 품질 기준에 부합하는 프리미엄 와인만을 생산하며, 이는 입문용 제품에도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희의 ‘Dailys’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조차도 프리미어 크뤼(Premier Crus) 포도밭에서, 때로는 그랑 크뤼 밭에서 생산됩니다. 저희는 이를 ‘입문 가격대의 프리미엄’이라고 부르죠~!!” 어깨를 으쓱해하며 들려주는 케셀러 씨의 설명에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시음 와인 4종 리뷰
*시음 와인의 제목 부분 한글 표기는 국내 수입사가 표기한 표기를 따르고,
본문 내용의 발음 표기는 필자의 표기입니다.

(왼쪽부터) 알 리슬링 카비넷, 더 데일리 리슬링 트로켄, 더 데일리 피노 누아 트로켄, 비숍스베르그
‘알’ 리슬링 카비넷 Riesling, Kabinett, ‘R’
캬~!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것 아닌가? 병 패키지만 봐도 따서 마시고 싶은 ‘싱그러움~ 뿜뿜’ 디자인이다. ‘티파니 칼라’의 그린 버전 같은 연녹색 레이블은 칸딘스키의 화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전형적인 독일 플루트 라인병에 라인가우 갈색을 입혔다. R 리슬링은 롤히, 뤼데스하임, 하튼하임, 에르바그 그리고 엘트빌에 위치한 포도밭에서 제공되는 포도로 생산했다. 이곳의 토양은 편암, 규암, 황토, 옥토로 구성돼 있다. 이곳 라인가우의 뛰어난 재배 조건과 평균 수령 25년 이상된 나무가 결합돼 아우구스트 케셀러의 떼루아는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최적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수확한 포도는 부드럽게 압착한 후, 다양한 사이즈의 온도 조절이 가능한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밭 별로 독립적으로 발효 과정을 거친다.
필자가 시음한 2023 빈티지 R 리슬링 와인은 청량한 연녹색에 밝은 노란빛 뉘앙스를 보이며, 잘 익은 사과, 복숭아, 레몬, 자몽의 상큼한 과실 향이 지배적이며, 라인가우 리슬링 특유의 부싯돌 같은 미네랄리티와 섬세한 흰 꽃향기가 특징이다. 전형적인 독일 카비넷 등급의 와인으로, 당도와 산도가 조화를 이루는 오프-드라이(Off-Dry) 스타일이다. 약 10%vol의 낮은 알코올 도수와 가벼운 바디감을 가졌으며, 생동감 넘치는 산도가 당도를 잘 잡아줘 청량하고 깔끔한 피니시를 선사한다. 케셀러 씨가 강조한 바대로, 아주 가벼운 스위트 와인으로서, 가벼운 대화를 위한 가벼운 음식의 에피타이저로도 아주 좋고, 식탁 위에 무엇이 있든지 완벽하게 어울릴 수 있는 올-커버링 화이트다. 놀랍게도 이 와인은 2022년 Wine Spectator Top 100 와인 중 48위에 선정되는 등 가격 대비 뛰어난 품질로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바 있다. 당시 평점은 90점으로써, “매우 매끄럽고 미네랄이 풍부하며, 레몬과 사과 향이 돋보이는 오프-드라이 리슬링. 세련되고 활기찬 스타일로 조화롭고 친근한 매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약 1만 케이스가 생산돼 접근성이 좋으며, 가격도 매우 합리적이라는 점이 선정에 큰 역할을 했다. 독일 와인을 향한 입문용이자 데일리 화이트 와인으로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다.
‘더 데일리 아우구스트’ 리슬링 트로켄 Riesling, Trocken, Qualitätwein, ‘The Daily August’
앞서 케셀러 씨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더 데일리 The Daily’ 리슬링이다.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이 와인을 구입한 소비자들이 레이블에서 의아해 하는 단어는 비교적 낮은 등급을 나타내는 ‘Qualitätswein/QbA’ 표시다. 이는 케셀러가 속한 VDP 자체 등급으로는 기본급인 ‘구츠바인(Gutswein)’에 해당된다. 여기에는 케셀러 회사의 철학이 있다. 실제로는 상위 등급인 VDP. Erste Lage(일급 밭)와 Grosse Lage(특급 밭)에서 수확한 포도 중, 일급 & 특급의 품질을 더욱 높이기 위해 엄격한 기준으로 가려내고 남은 포도를 사용해 ‘블렌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등급은 지방 와인급을 받은 것뿐이다. 따라서 이 라인업에서는 가격 대비 훨씬 우수한 구조감과 우아함을 자랑한다. 결국, 이 와인의 작명 철학은 소비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기 위한 배려의 결과며, 고급 밭 포도를 사용했음에도 등급을 낮춘 겸손의 산물이다. 생산자의 철학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할 수 있는 준수한 엔트리급 데일리 리슬링 와인이다.
필자가 시음한 2022 빈티지 ‘더 데일리 아우구스트’ 리슬링은 가볍고 신선하며, 활기찬 산미가 특징인 드라이~오프 드라이(Dry to Off-Dry) 화이트 와인이었다. 밝은 레몬 색상에 투명한 황금빛이 아름답게 비친 글라스 안에는 레몬, 망고, 사과, 배의 상큼한 과실향과 함께 라인가우 지방 점토 슬레이트 특유의 젖은 돌이나 젖은 흙내음, 부싯돌 같은 미네랄 뉘앙스가 느껴진다. 입안에서는 살구, 복숭아,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의 풍미가 화사하게 퍼지며, 높은 산미가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준다. 기록된 잔당은 9g/L로, 가벼운 당미를 전해 주며, 12.5%vol의 알코올이 적절한 비중감과 산뜻한 무게감을 더한다. ‘매일 즐기기 좋은 산뜻한 동반자’라는 슬로건처럼 마시기 편하면서도 구조감이 뛰어난 가성비 리슬링으로 평가된다.
더 데일리 아우구스트’ 피노 누아 트로켄 Pinot Noir, Trocken, Qualitätwein, ‘The Daily August’
“이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피노를 위한 좋은 곳입니다.”라고 케셀러 씨가 말한 대로, 아스만스하우젠(Assmannshausen)은 거의 1000년에 달하는 피노 누아 재배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곳 피노 누아의 역사는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프랑스에서 온 수도사들이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의 클론을 가져와 라인가우 지방에 심으면서 시작됐다. 특히 아스만스하우젠 지역 밭은 점토성 슬레이트 토양이고 기온이 조금 더 서늘한 남서향 지대여서, 피노 누아가 자라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피노 누아만을 재배하며,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1999년 빈티지 이후 시작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은 결국 과실을 더 잘 익게 하고, 독일 피노 와인의 스타일을 더욱 국제적이고 경쟁력 있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수작업으로 정성껏 수확한 포도는 밭 별 독립 양조를 거쳐, 2~3년 사용한 중고 오크통에서의 숙성 과정을 거쳐 병입된다. 흥미로운 것은, 여러 밭 중, 가장 중요한 밭 이름인 ‘휄렌베르크(Höllenberg)’는 직역하면 ‘지옥의 산’이라는 뜻인데, 작업하기 힘든 ‘가파른 언덕(Haldan)’이라는 고어에서 유래한 은유적 표현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경사가 최대 60도에 달할 정도로 가파른 점토질 슬레이트 토양이라 포도 재배가 무척 힘들지만, 그만큼 응축미 있고 우아한 레드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다. 독일 리슬링 사이에서 보석 같은 레드 와인을 찾을 때 이 이름을 기억해두면 아주 좋을 것이다! 그나저나 ‘지옥 밭’에서 이렇게 근사한 맛의 피노가 생산된다니 와인의 신비는 끝이 없다.
필자가 시음한 2021년 빈티지 ‘더 데일리 아우구스트’ 피노는 슈페트부르군더 100%로 생산됐으며, 맑고 연한 루비 레드 색상에, 산딸기, 싱싱한 체리, 새큼한 크랜베리 같은 신선하고 붉은 과실 향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은은한 향신료(흰 후추), 허브, 미네랄 뉘앙스가 겹쳐져 복합적인 매력을 준다. 입에서는 피노 특유의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산도와 부드러운 타닌이 균형을 이룬다. 13.5%vol의 준수한 무게감으로 최적의 구조감을 가졌고 질감이 매끄러워 목 넘김이 아주 좋다. 각종 버섯 샐러드, 부드러운 육류 요리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며, 퇴근 후나 피크닉 등 일상에서 가볍게 칠링(14~16°C)해 단독으로 마시기에도 좋을 듯하다. 부르고뉴 피노와 블라인드에서 구별할 수 없을 품질에, 뛰어난 가성비의 고급 데일리 드라이 레드 와인~!
‘비숍스베르그’ 리슬링 트로켄 에르스테 라게 Riesling, Trocken, ‘Rüdesheimer Bischofsberg’, VdP. Erste Lage
확장 과정에서 치득한 뤼데스하임 마을의 일급밭 비숍스베르크는 라인가우(Rheingau) 지역에서도 아주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축복받은 밭이다. 라인강이 동서로 흐르기에 완벽한 남향의 경사면이 조성돼 완벽한 일조량을 자랑하며, 덕분에 포도나무가 온종일 충분한 햇빛을 받아 포도가 아주 건강하고 완숙된다. 또한 밭 바로 앞에 흐르는 넓은 라인강이 거울처럼 햇빛을 반사하고 온도를 조절해 주며 서리를 방지하는 천연 보온 효과를 낸다. 마지막으로 토양의 마법이 남아 있다. 이 지역의 토양은 석영이 함유된 두꺼운 황토 퇴적층이 특징이다. 석영 성분은 와인에 날카롭고 정교한 미네랄리티를 부여하며, 점토 토양층이 깊어 포도나무 뿌리가 깊게 박히고, 이를 통해 복합적인 풍미와 탄탄한 구조감을 만들어내니, 강인함과 우아함을 두루 갖춘 멋진 리슬링 와인이 탄생하는 곳이다.
필자가 시음한 2020 빈티지 비숍스베르크 리슬링은 잘 익은 복숭아, 살구 같은 핵과류 향부터 은은한 멜론과 모과향을 지나 망고,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 향까지 아주 화려하게 피어난다. 여기에 흰 후추의 은은한 스파이시함과 고유한 페트롤-벤젠 풍미가 DNA를 명백히 표현하고 있다. 뤼데스하임 비숍스베르크는 풍부한 과일 향으로 매료시키면서도 동시에 농후하고 복합적이며 다층적인 맛을 지녔다. 긴장감 넘치면서도 매우 균형 잡힌 리슬링으로, 상쾌한 미네랄감과 특히 여운에서 느껴지는 매우 섬세한 짭쪼름함이 특징이다. 기록 잔당이 8.2g/L로 미묘한 당미가 느껴지는 오프-드라이 스타일이고, 높은 산미와의 조화가 뛰어나다. 12.5%vol의 알코올로 앞선 화이트 와인 대비 짙은 농축미를 느낄 수 있고, 깊이감과 긴 여운을 준다. 풍부한 과일 향과 정교한 미네랄리티가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는, 라인가우의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와인이 아닐까! 생선 요리, 게, 바닷가재, 조개류, 신선한 초밥들과의 기본적인 궁합이 좋고, 약간의 당도와 높은 산미 덕분에 향신료 매콤한 태국, 멕시코 음식들과의 어울림도 매우 좋다.